김준호 신부·박인환 목사, 신앙기 실은 에세이 나란히 출간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0.08.28 05:00

 

엥? 주노 신부가 장개(장가)갔다고? 아이고, 내가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어."

천주교 전주교구 김준호(70) 신부는 하마터면 '장가간 신부'가 될 뻔했다. 사연은 이렇다. 교구청에 근무하던 김 신부가 전북 장수의 장계성당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신자가 '장계'를 '장개(장가)'로 잘못 듣고 오해한 것이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신자들과 소박한 신앙생활을 해온 '양 떼 냄새 나는 목자(牧者)들'의 에세이가 잇따라 출간됐다. 김준호 신부의 '주노 신부 장개갔다네'(바오로딸 출판사)와 박인환(63) 경기 안산 화정교회 담임목사의 '기억'(신앙과지성사)이다.

김준호 신부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종부(병자)성사' 부탁 전화를 받는다. 부랴부랴 찾아갔더니 할머니는 멀쩡하다. 전화 건 이유를 물으니 "보고싶어서"란다. 외로웠던 것. 모심기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신자들이 모심기에 바빠 미사에 오지 않자 논으로 신자들을 찾아나선 김 신부. 이틀 동안 모심기를 했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전략을 바꿔서 직접 모를 심는 대신 "이 논의 벼 낟알이 더욱 알차고 크게 많이 맺게 해달라"고 축복했다. 그랬더니 신자들이 더 좋아했다. 김 신부는 이 일을 겪으며 '그래, 나는 교우(敎友)들의 영혼 건강을 위하여 일하는 사제다'라고 느낀다.

공소(公所) 회장님이 먼 길을 달려와 미사를 부탁하며 예물(헌금) 봉투에 '소'라고 적었다. "아니, 회장님은 박씨 아니세요?"라 묻자 회장님은 "우리 소가 등창이 나서 그러니 우리 소를 위해 미사 드려주세요"라고 한다. 김 신부는 "빨간약 사서 소 등에 발라주라"며 봉투를 돌려보낸다. 김 신부는 "나는 신학자도, 믿음 깊은 영성가도 아니다. 부족하고 못난 신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신부이기에 더욱 노력하면서 살았다"고 말한다.

실향민 2세인 박인환 목사의 책은 대부분 과거 텅스텐(중석) 광산으로 유명했던 강원 영월 상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러나 밑바탕엔 기독교 신앙이 확고하게 깔려 있다. 화정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주변은 농촌이었다. 한때 '큰 교회 목사'가 꿈이었던 박 목사는 할머니 권사의 질문을 받는다. "2년이나 3년쯤 있다가 갈 거죠? 나 죽거든 장사 치러주고 떠난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 박 목사는 이후 30년 넘게 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 당시 76세이던 권사님은 95세에 돌아가셨다. 물론 박 목사가 장례를 치렀다. 어린 시절,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어머니는 가정 예배를 인도하면서 교독문을 읽은 다음, 평안도 억양으로 "햐, 얼마나 좋은 말씀이네"라 하셨다. 지금은 명절 때 가족이 모이면 박 목사가 예배를 인도한다. 그런데 박 목사는 "목사인 내가 인도하며 드리는 예배가 아무래도 옛날 어머니가 인도하시던 가정 예배만큼 간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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