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이반 루프니크, 오영민 옮김, 『식별』, 바오로딸, 2011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식별

수녀원에 오기 전 직장생활을 할 때 동료 중에 나와 너무도 성격이 다른 동료가 있었다. 그와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몇 차례 언쟁까지 있고 난 후에는 직장생활 자체가 고통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중에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태22,39)는 말씀과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12,21)는 말씀이 강렬히 다가왔다.


나는 주님의 말씀과 뜻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부터 내 감정과는 반대로 그 동료가 오기 전에 일찍 출근하여 그의 책상을 몰래 닦기 시작했다. 먼지만 대강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닦고 그의 휴지통을 비우고 주변 정리까지 했다. 물론 그는 이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


처음엔 그 일이 힘겨웠다. 그러나 차츰 흥미로워지기 시작했고 설레기까지 했다.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하는 기쁨이 이런 것임을 깨달아 가며 직장생활이 즐거워지는 것이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의 성격이나 태도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연민하게 되었고 그를 위해 진실로 기도하게 되었다. 그와의 갈등이 내게 축복과 은총이 된 것이었다.

“사람은 식별을 통해 하느님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과도 자유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하느님과 진실한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존재하는 모든 것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랑의 눈을 뜨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식별, 22쪽)

‘루프니크’ 신부님이 쓰신 ‘식별’은 나에게 식별의 방향과 방법뿐 아니라 식별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생생히 알려주었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는 것은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길, 사랑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임’(같은 책, 28쪽)을 깨닫고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태도야말로 식별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하느님이 아닌 내 뜻만을 찾는 신앙생활, 믿음과 삶의 분리로 인한 폐해가 넘쳐나는 답답한 상황 앞에서 ‘루프니크’ 신부님의 ‘식별’은 맑은 샘물이 되어 우리 모두를 시원하게 적셔주고 있다.


- 주민학 벨라뎃다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 바로가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