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J. 크로닌 지음, 이승우 옮김, 『천국의 열쇠』, 바오로딸, 2008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까 고심했어요. 그러다 고른 책이 바로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입니다.

이 책은 프랜치스 치점 신부의 파란만장한, 그리고 인간애 넘치는 삶을 보여줍니다. 치점 신부는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기에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에요. 세상 속 성공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서, 선교를 하고 생명을 구하며 사제의 길을 가지요. 성품이 워낙 강직해 다른 사제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성령강림대축일에도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 있어도 좋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구요.” 슬리스 신부는 공책을 뒤적이며 검열관처럼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또 사순절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무신론자라 해서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무신론자로서 지옥에 가지 않은 사람을 한 사람 알고 있습니다. 지옥은 하느님 얼굴에 침을 뱉은 자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하셨다지요. ‘공자가 그리스도보다 유머가 풍부하다.’고요?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신부는 분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페이지를 넘겼다.
(중략)
“아무리 보아도 신부님은 이미 자기 영혼에 대한 지배력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치점 신부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누구의 영혼에 대해서든 지배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일이 없소.”
- pp.13-14

독자들은 치점 신부를 오해할 수 없지요. 그가 중국에서 펼친 선교활동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신부는 중국 황허 유역의 벽지인 파이탄에 부임합니다. 그곳에는 무너진 성당과 초가집 같은 외양간이 있을 뿐이에요. 바로 이곳에 그는 자신의 신앙과 하느님의 뜻을 채워갑니다. 벽돌을 만들어 성당을 세우고, 페스트가 퍼지자 구호소를 마련해 재난에 대처하지요. 이때 절친한 친구인 윌리 탈록이 찾아와 도와줍니다. 그는 의사로서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하다 병에 걸립니다. 죽어가면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고백하지요.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손꼽아봅니다. 이론이나 격식에 얽매인 신앙이 아닌, 삶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구현한 사람의 최후. 그리고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한 사람.

“자네가 우리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주게. 당신 아들이 훌륭히 죽어갔다고 말일세. 우습단 말야… 지금도 나는 아직까지 신이 믿어지지 않으니….”
“그런 것이 무슨 문제인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프랜시스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자기의 약함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져 아무렇게나 말이 튀어나왔다.
“하느님 쪽에서 자네를 믿고 있네.”
“속일 건 없어…. 난 회개를 하지 않았네.”
“인간의 괴로움은 모두 회개의 행위이네.”
- p.397

치점 신부는 감리교회 선교사들과 친교를 맺고, 지방 군벌들의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성당으로 대피시키기도 합니다. 여러 해가 흘러 늙고 쇠약해지지만 단순하면서도 강직하게, 뜨겁게 이끌어온 자신의 성직생활을 돌아보지요. 본국으로 돌아와 고향 트위드사이드 본당에 자리 잡고 한때 알았던 불행한 여인의 아들을 거두어 살게 됩니다. 고향생활이라고 해서 마냥 평화롭지는 않아요. 치점 신부를 문제시하고 이단시했던 교구청의 비서가 그를 조사하러 옵니다. 그러나 비서는 신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자신의 보고서를 찢어버립니다. 신부가 받았던 오해와 질시는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소년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가는 마지막 장면 속에서 말이지요.

“한련꽃을 주의해라, 안드레아.”
프랜시스는 마치 놀이친구에게나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우갈에게 놀림을 받지 않도록 말이다. 안 그래도 오늘 우리가 충분한 시련을 겪었다는 건 하느님도 잘 아실 거다.”
안드레아가 화단에서 지렁이를 잡고 있을 동안 노인은 도구를 넣어두는 창고에 가서 연어 낚싯대를 챙겨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이 지렁이가 잔뜩 들어있는 통을 들고 허둥지둥 달려나오자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트위드사이드 제일의 어부와 연어를 낚으러 가다니 넌 참 행복한 녀석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쁜 물고기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그걸 낚으라고 주셨단다.”
손을 꼭 잡은 채 사제관을 나선 그들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지더니 좁은 길을 따라 강 쪽으로 사라져 갔다.
- pp.644-645

이 책을 읽는 데 종교적 지식이 필요하진 않답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재미있고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치점 신부의 말과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가 아름답습니다. 천국문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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