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순 수녀, " 붓을 들면 가장 먼저 그 분의 얼굴이 떠오르지요"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신앙의 해' 기념 개인전 열어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김옥순 수녀가 그림을 그린 빨간색 표지의 그림책 <예수님은 날마다 웃었어요>는 예수의 삶에 대한 함축적이고 영감어린 이야기 방식도 좋지만 무엇보다 인물들 한명 한명의 표정에 베인 섬세한 따스함이 주는 힘이 크다. 말하자면 ‘누구나 참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랄까. 간혹 교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책을 읽을 때면 아이들은 내용에 앞서 예수의 커다란 눈망울과 환한 미소가 주는 느낌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아기 예수님의 생일>, <하느님이 만들었지>와 같은 다른 그림책과 수많은 엽서, 삽화 속에서도 김 수녀에게 ‘사람’은 빼 놓을 수 없는 주제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한마디 형용사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환희에 차 있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평온함을 전달한다. 넘치지 않는 표정 속에서 예수와 예수 곁에 있는 이들은 어떤 깊은 평온함 속에 있는 것이다.

성경 속에 새겨진 하느님의 깊은 내면을 화폭에 표현

11월 28일부터 시작될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김옥순 수녀를 서울 미아동에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원에서 만났다. 김 수녀는 “얼굴에는 존재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수도자니까 늘 성경을 대하고 말씀을 접하지요. 성경 속에 새겨진 그 분의 ‘측은지심’이 마음에 와 닿아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깊은 내면이에요. 그 분의 깊은 심중을 얼굴로 표현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에 그림을 그릴 때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그 분의 얼굴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자비하시고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런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해요.”

   
▲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원에서 김옥순 수녀 ⓒ문양효숙 기자

스물여덟 살에 수도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김옥순 수녀는 원래 그림을 좋아했다. 디자인 쪽 일을 하기도 했지만 수녀원에 들어온 후에는 수녀원 소임에 집중했다. 당시 수녀원 안에 미술부도 있었지만 ‘그림에 집착할까봐’ 선택하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수도회에서 정말로 필요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바오로딸 출판국에서 마감날짜를 앞두고 급하게 받은 책 표지가 맘에 들지 않아 출판국 담당 수녀들이 고심에 휩싸였다. 책이 나올 날짜가 이틀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 할까 고심하는 모습을 보다가 김 수녀는 “제가 한번 해 볼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 날, 김 수녀는 밤을 새서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나온 책이 그의 첫 번째 책 <암탉 니나>였다. 당시 광고 파트에 있었던 김 수녀는 이후 조금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년 뒤인 1987년 직접 글을 써 <완이의 기도>라는 그림책을 냈다.

첫 번째 전시는 2002년 제1회 가톨릭 수도자 미술전이었다. 그 때 첫 선을 보인 작품, ‘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라는 작품이 아직도 가장 마음에 남는다 했다.

“그 그림을 그렸을 때 참 좋았어요. 처음으로 시도한 ‘작품’이어서인지 간직하고 싶기도 했죠. 완전히 초탈한 사람,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얻으면서 가난한 사람, 그런 이미지였거든요. 다 그린 후에도 마음에 들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보곤 했어요. 물론 전시회 마지막 날 팔려서 지금은 볼 수 없지만요.”

한 때 ‘너무 집착할까봐’ 피하려 했던 그림이었는데 다시 시작하면서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었을까? 나의 길과 하느님의 길 사이 어디쯤에서 망설이지는 않았을까.

“그런 걸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그림을 그리는 게 정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인가? 그럼 그런 것도 아니예요. 내 성취 때문에 그리나? 그럼 그런 것도 아니예요. 내 안에서 ‘그냥’이라는 얘기가 나와요. 왜,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사람이 목소리가 좋아서, 인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좋잖아요. 그래서 내 안에서 그런 답이 나왔을 때 이게 나의 소명이구나 깨달았어요. 그냥 붓을 잡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요.”

   
▲ 김옥순 작,<빵과 포도주>, Mixed media, 42x30.5cm, 2012

전시회를 앞두면 그의 일상은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마치면 하루 종일 수녀원 내 반지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하루 종일 몰입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허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온다고. 김 수녀는 그림을 자신의 사도직으로 받아들였다.

“수도자로 부르심을 받으면 모두가 각자 하는 일을 통해 복음을 전하죠. 저는 그림을 통해 말씀을 전해요. 말씀은 글이고 그림은 느낌, 혹은 감각이니까. 저는 제 방법으로 하느님을 전하는 거예요.”

영감을 받고 창조하기까지, 모두 ‘성령’이 하시는 일

그러나 창작의 과정이 마냥 편하고 쉬운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아름다움을 토해내기까지 지난한 창작의 시간들을 고통스럽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옥순 수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며 “아이디어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라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막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나에게 깊이 남는 어떤 영상, 그런 것들을 만나려고 하죠. 그게 포착되는 순간이 참 기뻐요. 방법은 다양하지만 영감을 받고 창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모두 ‘성령’이 하시는 일이시죠. 그래서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 기도해요.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라고.”

   
▲ 김옥순 작, <치유하시는 예수>, Mixed Media, 70x49.5cm, 2011
그런 김옥순 수녀에게도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면한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적지 않은 듯 했다. 작품들의 마무리 단계에서 문득 “내가 지금 내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새로운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마음먹은 대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이건 아닌데’라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안의 벽을 허물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의 틀이죠. 그런데 두려운 거예요. 이것보다 못한 그림이 나올까봐.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니 선을 뵈자 싶었죠. 하지만 이걸 뚫고 나와야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어요. 저에게 커다란 과제죠.”

김옥순 수녀는 “마음이 요동치거나 시끄러울 때에는 붓을 잡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가 전하고 싶은 깊은 심중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평화롭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김 수녀가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고통도, 슬픔도, 그리고 기쁨도 다 지나간다”면서 “남는 것은 결국 그 분 한 분 뿐”이라 답한다.

“저는 실은 고통이나 슬픔을 너무 가까이 보려하지 않고 좀 떨어져서 관망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면 그게 고통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고통스러운 일도 나중에는 기쁨으로, 선한 것으로 바뀌거든요. 그러니 그것이 다가 아니에요. 현상적으로 주어지는 얄팍한 기쁨에 맘이 들뜨고 고통에 맘이 축 늘어질 필요가 없어요. 인생을 넓고 깊게 바라보면요.”

김 수녀는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저는 아름다움이 하느님과 연결돼요. 우리가 그 분을 직접 대면한 일이 없듯이 궁극의 아름다움도 세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그런 것이 아닐까 해요. 그래서 끊임없이 찾고 있지요.”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평화화랑에서 ‘신앙의 해’ 기념 개인전 열어

앞으로 김옥순 수녀는 ‘서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했다.

“피카소가 70세 넘어서 어린 아이처럼 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그림 그리기까지 50년 걸렸다’라고 말했대요. 그런 걸 ‘서툰 그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해요. 마치 어린아이 시절로 되돌아가듯이 기교와 능숙함을 떨쳐버리고 단순한 선, 가벼운 색감으로 말이에요. 덜어내고 덜어낸 ‘완전히 서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전시는 자극제 이면서 동시에 힘’이라고 말하는 김옥순 수녀의 개인전은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명동 평화화랑에서 열린다. 그가 고민하면서 1년 여간 준비한 3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깊이 있는 색감을 중시 여기는 김 수녀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보다 더 ‘정화된 색감’을 나타내려 노력했다.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치유하는 예수’에는 짙푸른 초록의 바탕에 구원을 갈망하는 듯한 손들이 형용하기 힘든 표정의 예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김 수녀는 “예수님께서는 측은지심을 느끼고 계시죠”라고 설명했다. 일면 무표정해 보이는 예수의 깊은 응시는 ‘그 분이 지금 나를 보고 계시다’라는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 김 수녀는 “하느님의 자비를 온 몸으로 살아낸 예수의 모습에 사로잡혀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분의 마음이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 김옥순 작,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Mixed Media, 110*65cm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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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보기: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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