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바오로딸, 2011
“예수님은 백인이 아니다.”(맬컴 엑스)
며칠 전 내가 오래도록 아끼던 작고 마른 흑인 모습의 목각 성모님 상을 아프리카로 선교 가시는 선배 수녀님께 선물했다. 수녀원 내 작은 책상 위에서 긴 세월 내게 힘이 되어주셨던 성모님 상이었다. 회갑이 넘으셨음에도 아프리카로 선교를 지원하신 선배 수녀님께 그 성모님 상을 선물하니 왠지 흑인 성모님께서 수녀님과 아프리카의 형제, 자매들을 지켜주실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졌다.
까만 얼굴의 성모님 상은 당신처럼 까맣고 마른 아기 예수님을 업고 계신 형태였다. 가난하고 척박한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이 느껴져 오는 참 아름다운 성모자 상이었다.
“예수님은 백인이 아니라고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맬컴 엑스가 미국의 어떤 대학에서 연설했을 때 학생들은 어찌나 놀랐는지 고정관념을 단칼에 박살낸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백인이 아니다. 성모님도 백인이 아니다. 그런데 왜들 모두가 백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스도교 성상들이 서양사람 얼굴을 하게 된 것은 길게 잡아 600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 그런데 왜 한국교회에서는 한국사람 성모님을 만드는 걸 이상하다고 보는가… 우리도 이제는 우리에게 맞는 토착화를 이루어야 한다.”
(최종태,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 108-109쪽 참조)
중동지역에서 나고 자라신 예수님, 성모님이 실제로 백인이 아니셨음을 조각가 최종태 교수님의 책을 읽고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신 그 크신 사랑... 육화의 신비를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들으면서 각 나라마다 그들 고유의 예수님과 성모님을 그리고 조각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이 한국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의 토착화는 오랜 선입관을 깨는 일이라 많은 도전과 갈등을 감수해야 하리라.
『산다는 것 그린다는 것』을 읽으며 토착화된 신앙과 예술의 외길을 걸어온 한 장인의 진실함을 만날 수 있었다. 팔순의 원로 조각가 최종태 교수님에게 있어 조각은 바로 당신 자신이었다. 이제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 친근한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습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 주민학 벨라뎃다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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