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얼굴을 보는 기쁨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라는 질문 앞에 서면 나는 미소부터 나온다. 그리고 나의 공동체 수녀님들을 떠올린다. 방문을 열고 구두를 신으려는데 흙 묻은 내 구두를 누군가 몰래 가져가서 광나게 닦아놓거나 다림질을 하려고 걸어둔 옷이 어느새 다림질되어 기다리고 있다거나. 수도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마치 사랑의 경쟁을 하러 온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행은 가능한 한 모르게 할 때 가장 재미가 나는 것이라는 고수(?) 수녀님들의 가르침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모르게 그 대열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이렇게 내 삶 안에 내 동료 수녀님들 안에 살아 계신다. 그리고 매일매일 나에게 손을 내미신다. 때로는 멍해지는 강한 충고로, 때로는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처럼 뜻밖의 사랑의 선물로 늘 신선한 충격을 주시며 내게 오신다.

나의 상처와 아픔에 내 손을 붙잡아 주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동료 수녀님을 보면서 나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송용민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신앙 감각’(세상 속 신앙 읽기, 10쪽)이 아닐까?

“믿는다는 것은 나한테 익숙한 삶에 변화를 촉구하는 힘든 도전일 수 있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는 아름다운 체험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제3의 눈’을 갖는 것이다.

내가 어려서 보지 못했던, 때로는 나이가 들어서 가려졌거나 스스로 보고 싶지 않아 감아버린 눈을 다시 뜨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심어주신 신앙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진흙탕 같은 세상 속에서도 진주를 발견하고,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는 영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같은 책, 9-10쪽)

돌아보면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찬 것 같다. 그러나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마치 사랑으로 가득 찬 것 같다. 내가 살아 있고 이렇게 숨을 쉬고 있다니. 그리고 힘에 겨운 내 곁의 사람을 붙들어 주며 힘이 되어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라는 눈 말이다.

질곡처럼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실타래같이 엉켜 무디어진 신앙 감각을 따뜻한 주님의 마음으로 되찾아 주는 듯한 송용민 신부님의 책을 손에 쥐고 나는 말없이 웃었다. 하느님의 얼굴을 또 보게 된 것이다.

- 주민학 벨라뎃다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 바로가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