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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예수님을 닮은 바보

by 바오로딸 2011. 12. 20.

지난 금요일 저녁, 길음동성당에서 연극 <바보 추기경>을 보았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오셨더라구요.

가톨릭 문화기획 IMD가 제작, 기획한 작품으로 2011년 1월 24일 故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 기념공연이 첫 무대였답니다. 그 이후로 지금껏 2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고 하네요.



 

연극은 사경을 헤매는 추기경님을 비추며 시작됩니다. 장엄한 성가와 생생한 실루엣, 배우들의 다급한 외침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어서 추기경님이 간병 수녀, 신문사 기자를 만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야기들은 슬프면서도 담백하고, 웃기면서도 짠해서 좀처럼 한눈을 팔 수 없었지요.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었던 수환은 장사꾼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에게 신부가 되라고 하지요. 결국 등 떠밀리다시피 신학교에 들어간 수환. 큰 인물이라고만 여겼던 추기경님의 성소가 어머니의 권유에 있다는 것이 뜻밖이기도 했지만, 작품에 빠져들수록 그 동기에 깃든 순종과 결연의 의미가 먹먹하게 다가왔습니다. 추기경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냄으로써 더욱 숭고해지는 분이었어요.



학도병 통지서를 받고 괴로워한 수환. 태평양 전쟁중 배 위에서 깨달음을 얻은 수환. 가톨릭에 비판적인 원고를 그대로 신문에 싣고, 민주화 항쟁 때 학생들을 군홧발로부터 지키며, 박대통령에게 정부의 관대함을 호소한 추기경. 얼마 안 되는 통장 잔고와 두 눈을 내놓고 돌아가신 바보 추기경. 손꼽고 싶은 장면이 여럿이네요. 마음에 남는 말씀도 가득합니다.

그는 더 가난하게 살지 못해 후회스럽다고 했어요.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며 마음 아파했구요. 그 모습은 마치 티 없는 거울 같아서 내 교만, 욕심, 이기심을 몽땅 비추는 듯했답니다. 부끄러웠지요.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가슴 속이 환해지고 따뜻해지면서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은 기분,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으니까요.

추기경님은 바보가 맞습니다. 평범한 시골사제가 되길 바랐으나 무거운 사명을 지고 정치의 한복판에까지 섰지요. 신의 은혜를 다 깨닫지 못한 스스로를 ‘바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을 닮은 바보네요. 연극 <바보 추기경>은 죽는 순간까지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 김수환 추기경님의 일대기였습니다.




길음동성당 공연이 마지막 전 공연이었다고 해요. <바보 추기경>이 막을 내리는 것은 아쉽지만, 또 다른 공연을 준비할 가톨릭 문화기획 IMD를 응원해야겠습니다. 추기경님의 힘 있는 말씀 한 구절을 남기며 물러갈게요.

“고난을 통해 단련하시는 하느님, 저를 어디로 보내시렵니까.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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