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국 글, 장준 그림, 『동글동네 모돌이』, 바오로딸, 2012

 

아름다운 인연

“할아버지 나 영세했어요. 눈이 많이 쌓여서 이제야 와서 보고드리는 거지만, 할아버진 지금 아주 자유로우니까 내가 그날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 다 들으셨지요? 사실 난 신앙에 대해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잘 몰라요. 하지만 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야 하는데, 꼭 만나야 하는데, 내가 할아버지와는 다른 곳에서 헤맬까 봐 겁나서, 그래서 영세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난 할아버지와 모세 수사님이 만든 세상이 좋고, 나도 거기에서 살고 싶으니까…” (동글동네 모돌이, 235쪽)

이 책을 읽으면서 읽는 내내 ‘이런 게 가능할까?’ ‘이건 사실이 아니야’ ‘이건 불가능해’ ‘이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아’라는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여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그래서 소설 같지 않은 그런 소설-이를테면 완득이-이길 바랐다.

반감과 호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소설 맨 끝에서 위의 문장을 만났다. 위 문장은 이 책에 공감할 수 없었던 나의 모든 생각을 일순간 씻어버렸다.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그러면서 신앙인인 우리가, 수도자인 내가 만들어 가야 하는 세상. 내가 살아가는 이유임을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모돌이처럼 살고 싶은 세상, 팍팍한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세상,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그런 세상을 만들 능력이 주어져 있음을 안다.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모습을 심어주셨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름다운 인연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지상에는 없는 인연이기에 그리워서 쓴 것이라고 한다. 많이 출간되고 있고 또 인기를 누리는 청소년 소설은 대부분 다 지극히 현실적인 그래서 너무 아픈 얘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저자는 무거운 세상의 평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런 글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와 누나는 한국에 두고 아빠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온 모돌이의 이야기이다. 그런 모돌이는 동글동네에 살게 되고 그 마을에 있는 수도원의 모세 수사와 할아버지 수사님을 만나면서 삶의 걱정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다.

낯선 곳에 하나씩 적응해 나가는 모돌이의 모습을 저자는 그냥 담담히 적고 있다. 그 담담함 속에 숨겨진 모돌이의 외로움과 고독에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모세 수사와 할아버지 수사님, 그로 인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게 느껴질 만큼. 저자의 말대로 정말 아름다운 인연들이다. 그런 인연들이 모여 모돌이가 독백으로 마지막으로 하는 말, 그런 세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팍팍한 현실이긴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이 주신 능력으로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주고 또 그런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면 정말 좋겠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좋은 인연이 되어주고 있는지 오늘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 황현아 클라우디아 수녀

*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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