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 지음 | 김옥순 그림 | 165*225 | 216쪽
가리산 깊은 골짜기에는 눈먼 벌치기가 산다.
그는 어렸을 때 크게 눈병을 앓았다.
끼니만 겨우 이어가는 형편에 치료는 꿈도 꾸지 못했다.
아버지마저 산판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그런 아버지를 남겨둔 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빛만이 아니었다.
그는 살아야 할 희망도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벌이 날아왔어유, 벌이 날아왔어유.”
춤을 덩실덩실 추며 마당을 돌았다.
마당 한쪽으로 삐쭉 솟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서서 다시 춤을 추며 마당을 돌았다.
몇 바퀴 더 돌다가 방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아부지, 벌이 날아왔어유.”
방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37쪽)
눈먼 벌치기!
무력감에 휘감겨 땅바닥에 주저앉은 그에게 삶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붉은 태양을 가슴에 안고 달려들었다.
뜨거운 열기, 어지럽도록 환한 빛이 퍼져 나왔다.
그가 살던 골짜기만큼 움푹 팬 삶의 굽이굽이마다 따사로운 봄빛이 스며들었다.
그는 이제 희망을 간직한 사람, 빛을 간직한 사람으로 되살아났다.
- 유 글라라 수녀
* 유 글라라 수녀님 블로그 '바람 좋은 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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