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팀 버튼|주연 조니 뎁, 위노나 라이더|판타지, 멜로|미국|1991


가위손을 가진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성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벗이라곤 고장 난 기계들과 미처 못 붙인 두 손뿐이었습니다.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손에 가위가 달렸지만 기계 또한 아니었습니다.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 그는 인조인간입니다. 과학자가 미완성으로 남긴 채 죽는 바람에 차가운 가위손을 갖고 있지요. 외딴성에서 지내다 어느 마음 착한 사람 덕분에 마을로 나오게 됩니다. 처음엔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습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자를 수 있는 손 덕분에 인기 스타가 되지요. 우리 정원의 나무를 손질해줘요. 개털을 깎아줘요. 내 머리를 잘라줘요. 가위손은 당신 탓이 아니에요. 희망을 가져요. 사람들은 그를 독특하면서도 좋은 친구로 여기는 듯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깁니다. 그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요. 신을 믿는 한 여자는 그를 사탄으로 취급합니다.



“그는 지옥에서 온 거야. 사탄의 힘이 넘치고 있어. 저 길 잃은 양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에드워드는 자신이 양이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며 뒷걸음질 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돌리기 시작합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임한 싸움도, 우연히 입힌 상처도 범죄인 양 받아들이며 멀리하지요. 근본적인 이유는 보통 사람들의 것과 다른 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픈 소망과 예쁜 소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날카로운 손에 가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싫다.”
10월 23일자 <서울주보>에 실렸지요. 마하트마 간디가 교회에서 쫓겨나며 남긴 말이에요.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인도인들은 인종차별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란 말을 줄기차게 듣는 신자들이 정작 타 민족, 타 종교를 배척하는 모습은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그런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교회를 돌아 나오던 간디의 실망에 성으로 도망치던 에드워드의 슬픔이 겹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은 무엇보다 긴급한 요구와 특수한 상황에 무조건 응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어떤 사람들에게라도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 <서울주보> 제1816호 2면

허영엽 신부님이 쓰신 글은 사람들이 에드워드를 대했던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영화 속이긴 하지만 그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었던 손… 겨울이 다가오네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눈발을 만들어내는 에드워드가 생각나겠지요. 그때 헤아려봐야겠습니다. 나뭇가지든 머리칼이든 마다하지 않고 잘라주었던 가위손의 마음을요.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 포스터와 맨 아래 이미지는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가운데 이미지들은 영화 장면을 캡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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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테렌스 맬릭|주연 브래드 피트, 숀 펜|드라마|미국|2011


“어머니, 동생… 그들이 당신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한 사람의 독백으로 시작됩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두 동생과 함께 살았던 남자. 동생 중 한 명을 잃고 늘 같은 꿈을 꾸어온 남자. 그런 그에게 어머니가 말합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이 있단다. 현실만을 쫓는 삶과 사랑을 나누는 삶. 어떤 삶을 살지는 네가 선택해야 한다.”

아마도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었던 말 같습니다. 아버지가 ‘현실을 쫓는 삶’을 가르친다면 어머니는 ‘사랑을 나누는 삶’을 보여주지요. 큰아들은 그들 밑에서, 아니 그들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아버지한테 말 자르지 말라고 혼난 뒤 어머니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듭니다. 아버지한테 밭을 제대로 일구라고 잔소리 들은 뒤 어머니가 연결한 호스에서 물을 받아 마십니다. 작품에는 이런 독백도 나오지요. “아버지, 어머니, 저는 언제나 당신들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아들이 강한 사람으로 크길 원합니다. 엄마처럼 순진하면 안 된다고, 잘 먹고 잘 싸우고 일도 잘해야 한다고, 그렇고 그런 놈들이 더 잘 산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 나름의 사랑입니다. 아들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풍요를 누리길 비는 간구입니다. 허나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는 소년답게 저항합니다. 나무를 후려치고 빈집의 창문을 깨부숩니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는 동생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그런 뒤에는 다시 어머니의 미소와 포옹 안으로 돌아갑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의 성장과 가족사가 맞물리는 가운데 인생의 희로애락이 이어지지요. 단란했던 가정에도 아버지의 실직, 동생의 죽음이라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십일조까지 바쳐온 자신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기냐고 절규하는 아버지. 강인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미움 속에 묻혀 있던 사랑을 발견하는 아들. 우리들의 인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시는 분만 하느님이 아니라 거두시는 분도 하느님입니다. 지켜주시는 분만 하느님이 아니라 등을 보이시는 분도 하느님입니다.”

시련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개는 착하게 살아온 자신한테 왜 벌을 내리냐며 신을 원망하곤 하지요. 그러한 순간에 기적처럼 드러나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시련의 순금 부분이라고 할까요. 그러한 때 곁에 있는 생명들은 희망입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조물주로서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으로서 우리 삶에 깃들여 계심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철학적인 연출이 돋보인 <트리 오브 라이프>. 상영시간이 꽤 길게 느껴질 수 있어요. 원시림과 심해, 우주가 펼쳐지는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들이 왜 나오나 의아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곱씹을수록 좋은 메시지가 남는답니다. 사랑과 희망으로 목을 축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 이미지는 공식 홈페이지 내 영화 정보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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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어성경에도 여러 종류가 있더라구요.
대표적으로 The new American Bible과 예루살렘 바이블이 있던데,
어떤 성경이 더 보편적이며
제가 읽기에 좋을까요?
또 두 성경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제 영어 실력은 상 정도이며, 영어소설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A) 우리 나라에도 공동번역 성경과, 새번역 성경이 있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예루살렘 바이블과 아메리칸 바이블이 있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은 천주교와 개신교 성서학자들이 모여
함께 번역한 성경인데 주로 가톨릭에서만 사용했습니다.
그때 번역취지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그 뜻이 잘 와 닿도록 하는 것이 었다고 합니다.
성경시대의 문화적 배경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달라
쉽게 풀어 썼다고 할 수 있죠. 뜻이 통하도록 윤문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도 성서학자들이 많아지면서
원문과 가까운 성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0주년 신약성경과 새번역 성경입니다.
주석도 달려 있고, 병행구절도 있어 같은 단어의 의미가
어떤 구절과 구절에 쓰여졌는지 보면서 빛을 받는 것이지요.

이처럼 Good Bible과 American Bible도
우리나라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아메리칸 바이블은 우리의 새번역성경처럼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성경으로
정확한 번역이 특징입니다. 예루살렘 바이블처럼 원문에
가까운 건 아니지만 오늘날 추세에 따른 용어 등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각주도 달려 있고, 저렴한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교회 전례로 새번역성경을 사용하는 것처럼
영어성경도 아메리칸 바이블로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홈지기 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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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고운 노래, 구성진 강연, 감미로운 기타 연주.
향긋한 커피,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녀님들, 마음껏 웃고 즐기는 사람들….

2011 바오로딸 문화마당을 풍성하게 해줬던 것들이에요.
현장에 가득했던 기쁨과 행복을 영상으로 느껴보세요~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서원을 세상에 열어 보이는 바오로딸 문화마당,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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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사도 4,32-34r)

1987년 5공의 군사독재로 많은 이가 고통을 받던 시절, 서울 상계동 철거민들의 철거 잔해 아래에서 놀던 철거민 어린이가 철거된 집 담이 무너지면서 목숨을 잃는 참 가슴아픈 사건이 있었다. 그때 수녀원에 오기 전 복음적인 공동체를 꿈꾸며 고민이 많던 청년이었던 나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 무너진 담을 붙들고 많이 울었다.
그 어린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20여년이 지났다. 사도행전에서 말씀하시는 모두가 한 몸 한 형제 되어 서로를 자신처럼 보살피고 돌보는 공동체 건설은 여전히 내 가장 큰 꿈이다.
이 꿈이 내가 살고 있는 수도원 공동체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 지구공동체와 함께 연대하여 이루어져가야 한다는 차원에서는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않는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사도들을 통해 이미 당신의 공동체를 건설해 가고 계심을 사도행전은 생생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오로와 실라스가 마케도니아를 여행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필리피’라는 도시에 머무르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붙잡혀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들은 한밤중에도 찬미와 기도를 했다.”(사도 16,23-34 참조, 만화로 보는 사도행전 36쪽)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하다 감옥에 갇혔음에도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셨던 바오로 사도와 실라스의 모습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 우리 어린이들이 가야 할 목적지는 바로 이러한 태도요, 이와 같은 공동체이다.

『만화로 보는 사도행전』이 고마운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참된 꿈을 꾸게 해주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열정이 생생히 묻어있는 사도행전을 간결한 만화로 표현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부활의 증인들의 발자취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했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더 이상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없기를…. 사도행전을 읽는 어린이들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이 땅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주역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도한다.

- 주민학 벨라뎃다 수녀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삶과 신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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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친구 아들이 이번에 첫영성체를 받아요.
선물을 주고 싶은데 뭐가 좋을까요?

A) 안녕하세요?
아이들 첫영성체 선물은
아무래도 성경책이 제일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어른들이 보는 성경은 아이들한테 너무 어려우니까
그림이 있는 성경 신약편으로 선물해 주시면
예수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래 간직하면서 첫영성체의 기쁨을
되새기지 않을까요?
그럼 좋은 선물 되길 바라며.

홈지기 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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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로 돌아온 비둘기(1851)
밀레이 John Everett Millais(1829-1896)



두 소녀가 있습니다. 한 소녀는 비둘기를 품에 안았고, 다른 한 소녀는 비둘기의 날갯죽지에 입 맞춥니다. 비둘기는 젖은 것처럼 보입니다. 채 마르지 않은 깃털들이 삐죽삐죽하지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이 그림은 대홍수 때 노아 일가와 동물들만 살아남았다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노아의 나이가 600세였는데, 그림에는 나이 든 노아 대신 앳된 소녀들이 등장하지요. 이들이 노아의 며느리라고 해요. 빛나는 금발머리와 홍조를 띤 볼, 도톰한 입술. 소녀들이 있으니 오래된 이야기가 한결 산뜻하게 다가옵니다.

비둘기는 어린 올리브 잎을 물고 왔습니다. 어린잎은 곧 대홍수가 그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소식이지요. 이렇게 기쁜 소식을 갖고 온 비둘기이니 얼마나 귀하고 반가웠을까요? 비둘기를 품에 안은 소녀의 마음, 비둘기에 입을 맞추는 소녀의 마음 모두 헤아려집니다. 오랜 비도, 물에 잠긴 것들이나 휩쓸려간 것들도 지금 떨고 있는 비둘기에 비추면 다 과거일 뿐입니다.

예로부터 비둘기는 좋은 뜻을 나타내는 새였어요. 앞서 언급한 노아의 방주 이야기만 봐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희망의 상징이었지요. 동시에 다시는 물로 사람들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하느님의 뜻을 전달한 평화의 상징이었구요. 요즘 사람들도 비둘기더러 ‘평화의 상징’이란 말을 하곤 합니다. 수가 너무 늘어난 데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긴다며 홀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지만요.

몇 년 전 베네치아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 중심지에 위치한 산마르코 광장에 들렀을 때예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지요.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고, 휴식을 취하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비둘기들이 많았어요. 지붕이면 지붕, 광장이면 광장, 어느 곳을 봐도 비둘기가 눈에 들어올 정도였으니까요. 녀석들은 구구거리며 떨어져 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쪼아 먹었습니다.

함께 있던 친구가 비둘기를 보며 한마디 하더군요. “저놈의 비둘기, 콱 밟아 죽이고 싶어!” 꼬질꼬질한데다 길을 가로막고 있고,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으니 나온 말이었을 거예요. 그 뜻은 알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서늘해지더라구요. 비둘기의 목숨이 사람 손에 달린 것은 아닌데. 어쩌면 사람이 비둘기보다 더 더러울지도 모르는데.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왜 이 지경이 되었나 생각하니 씁쓸해졌지요.

「성북동 비둘기」란 시가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각박해진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역으로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에요.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많이들 보셨겠지요. 비둘기가 인간과 환경에 해를 끼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허나 그렇게 되기까지 사람들이 한 일은 없을까요? 비둘기가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단정해도 되는 걸까요? 그런 점들을 돌아보며 이 자리에서 「성북동 비둘기」를 함께 읽어보고 싶네요. 한번쯤은, 새 소식을 물고 온 비둘기를 기쁘게 맞는 소녀의 마음으로요.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전문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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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J. 크로닌 지음, 이승우 옮김, 『천국의 열쇠』, 바오로딸, 2008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소개해드릴까 고심했어요. 그러다 고른 책이 바로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입니다.

이 책은 프랜치스 치점 신부의 파란만장한, 그리고 인간애 넘치는 삶을 보여줍니다. 치점 신부는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기에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에요. 세상 속 성공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서, 선교를 하고 생명을 구하며 사제의 길을 가지요. 성품이 워낙 강직해 다른 사제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성령강림대축일에도 신부님은 신자들에게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 있어도 좋은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구요.” 슬리스 신부는 공책을 뒤적이며 검열관처럼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또 사순절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지요. ‘무신론자라 해서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무신론자로서 지옥에 가지 않은 사람을 한 사람 알고 있습니다. 지옥은 하느님 얼굴에 침을 뱉은 자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하셨다지요. ‘공자가 그리스도보다 유머가 풍부하다.’고요?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신부는 분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페이지를 넘겼다.
(중략)
“아무리 보아도 신부님은 이미 자기 영혼에 대한 지배력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치점 신부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누구의 영혼에 대해서든 지배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해본 일이 없소.”
- pp.13-14

독자들은 치점 신부를 오해할 수 없지요. 그가 중국에서 펼친 선교활동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신부는 중국 황허 유역의 벽지인 파이탄에 부임합니다. 그곳에는 무너진 성당과 초가집 같은 외양간이 있을 뿐이에요. 바로 이곳에 그는 자신의 신앙과 하느님의 뜻을 채워갑니다. 벽돌을 만들어 성당을 세우고, 페스트가 퍼지자 구호소를 마련해 재난에 대처하지요. 이때 절친한 친구인 윌리 탈록이 찾아와 도와줍니다. 그는 의사로서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하다 병에 걸립니다. 죽어가면서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고백하지요.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손꼽아봅니다. 이론이나 격식에 얽매인 신앙이 아닌, 삶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구현한 사람의 최후. 그리고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한 사람.

“자네가 우리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주게. 당신 아들이 훌륭히 죽어갔다고 말일세. 우습단 말야… 지금도 나는 아직까지 신이 믿어지지 않으니….”
“그런 것이 무슨 문제인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프랜시스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자기의 약함이 너무나 어리석게 느껴져 아무렇게나 말이 튀어나왔다.
“하느님 쪽에서 자네를 믿고 있네.”
“속일 건 없어…. 난 회개를 하지 않았네.”
“인간의 괴로움은 모두 회개의 행위이네.”
- p.397

치점 신부는 감리교회 선교사들과 친교를 맺고, 지방 군벌들의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성당으로 대피시키기도 합니다. 여러 해가 흘러 늙고 쇠약해지지만 단순하면서도 강직하게, 뜨겁게 이끌어온 자신의 성직생활을 돌아보지요. 본국으로 돌아와 고향 트위드사이드 본당에 자리 잡고 한때 알았던 불행한 여인의 아들을 거두어 살게 됩니다. 고향생활이라고 해서 마냥 평화롭지는 않아요. 치점 신부를 문제시하고 이단시했던 교구청의 비서가 그를 조사하러 옵니다. 그러나 비서는 신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자신의 보고서를 찢어버립니다. 신부가 받았던 오해와 질시는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소년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가는 마지막 장면 속에서 말이지요.

“한련꽃을 주의해라, 안드레아.”
프랜시스는 마치 놀이친구에게나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우갈에게 놀림을 받지 않도록 말이다. 안 그래도 오늘 우리가 충분한 시련을 겪었다는 건 하느님도 잘 아실 거다.”
안드레아가 화단에서 지렁이를 잡고 있을 동안 노인은 도구를 넣어두는 창고에 가서 연어 낚싯대를 챙겨들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이 지렁이가 잔뜩 들어있는 통을 들고 허둥지둥 달려나오자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트위드사이드 제일의 어부와 연어를 낚으러 가다니 넌 참 행복한 녀석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쁜 물고기를 만드시고, 우리에게 그걸 낚으라고 주셨단다.”
손을 꼭 잡은 채 사제관을 나선 그들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지더니 좁은 길을 따라 강 쪽으로 사라져 갔다.
- pp.644-645

이 책을 읽는 데 종교적 지식이 필요하진 않답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재미있고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에요. 무엇보다 치점 신부의 말과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가 아름답습니다. 천국문의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권해드립니다.

- 광고팀 고은경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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